예년 같으면 7월에나 시작되던 장마가 올해는 일찍 찾아왔다. 한 열흘 전부터 비가 오다가 말다가 하더니 오늘은 활짝 개었다. 파아란 하늘이 보이는 쾌청한 날씨다. 미세 먼지로 뿌옇던 대기가 비에 씻겨서 앞산 뒷산이 더 가까이 보인다. 평년보다 3,4도나 높던 기온도 오늘은 그리 높지 않다는 예보가 나왔다.
장마라는말만들어도 기분이 찝찝해지는것같다
지난해는 마른장마가 계속되는 기현상도 있었다. 올해는 아직 그런 일은 없었으나 하도 기상 이변이 속출하는 세상이라 언제 국지성 폭우가 쏟아질지, 광풍(狂風)같은 강풍이 동반될지 아니면 마른장마라는 괴이(怪異)한 장마가 있을지? 이 분야 전문예보관도 예상을 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긴 하여도 이리도 좋은 날씨엔 도심을 떠나 어디로든 자연을 찾고 싶은 마음이 누구나 생기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울렸다.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순모임 후 산행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순은 60대가 두 명, 70대가 일곱 명 그리고 80대가 한 명이다. ‘그거야 당연하니 물을 이유가 없으니 응당 그래야지’라고 했다.시간에 맞춰 일행이 모였다.
오늘은 산행 중 적당한 장소에서 순모임을 하기로 뜻을 모으고 이동 수단으로 도시철도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모두 지공선사(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하는 사람을 이렇게 일컫는 신조어다)라 명륜역에서 동대신동역까지 무임승차(?)를 하였다.
꽃마을 가는 새마을버스를 타는 출구를 잘못 알아 2번 출구를 나와서 몇 사람에게나 물어물어 길을 건너 6번 출구 앞에서 새마을버스를 맞았다. 때는 벌써
정오를 넘었으나 산행을 마치고 난 후에 배꼽시계를 달래자고 하고 그대로 차에 올랐다.
마침 출발역 승차라 모두 자리에 앉았다. 대신동운동장을 지나 민방위훈련장도 지나 경사진 산길에 접어들어 한참을 오르니 꽃마을이 우릴 맞아 주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알록달록 옷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떼 지어 오르거니 서성이거니, 꽃마을은 붐비고 있었다.
이름이 꽃마을이라 꽃으로 거리도 꾸미고 화원(花園)도 많고 영국식 가옥 풍경처럼 창문마다 꽃으로 장식한 마을을 보려니 하는 막연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꽃은 고사하고 음식점 간판만 눈에 들어온다. 가판장사도 모두 먹는 것뿐이다.
산행을 하고 점심을 하자던 승차 전 약속은 간데없고 여기서 우선 배를 채우고 산행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쪽으로 여론(?)이 기운다. 여론은 가변이라 믿을 게 못되는 건
정치판이나 산행에서나 마찬가진가 보다. 하기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하지 않던가.
우리는 앞 마당애 주차가 많은 집에 들었다. 더워서 그런지 방 안이 차서
그런지 집 추녀에 달아서 차일을 치고 차일 아래 놓인 여러 개의 식탁엔 거지반 손님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얼른 긴 식탁을 잡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웨이터가 나타나질 않는다. 너무나 붐비는 때라 새 손님이 왔는지 갔는지 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기다리는 동안 k장로님이 통닭을 내놓는다. 부인 권사님이 삶아 주었단다. 고마운지고, 소금예 찍어 두 마리씩이나 마파람에게 개눈 감추듯 해치웠다. 꿀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시를 넘은 시간이기때문이다. 아침도 걸르고 나온 일행도 있었다. 우린 어탕국수에 밥을 주문하였다. 산 중에서 어탕(魚湯)이라. 그거 괜찮을 것 같았다. 어탕국물에 말은 국수가 별미였다. 먹고 난 뒤 하는 말이 앞에다 짐을 실었으니 산을 어떻게 오르겠느냐는 걱정이었다. 오르다 못 오르면 그냥 내려가도 벌금 안 받는다며 대장이 산길을 몰아붙인다.
군데군데 안내판이 세워져 있긴 해도 갈래길이 있으면 물어보아야 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세월이 오래오래 지난 뒤에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두 길이 숲 속에 갈라져 있어 사람이 덜 다닌길을갔더니 그 때문에 이렇게도 달라졌다”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두어 시간을 올라 엄광산 정상에 이르게 되었다. 정상(504m)이라는 표지석 가까이 정자(亭子)가 있었다.
어디메쯤 적당한 자리가 있으면 순예배를 하자고 입을 맞추고 떠났었던 참이었다. 여호와 이레였다. 제일 먼저 정자에 오른 C집사님은 벌써 레코드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라와’라는 18번 찬송을 뽑는다. 이 산정에서 누가 연주를 하였던가? 누가 찬양을 불렀던가? 아마도 우리 순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일행이 정자에 오르니 다른 산행객이 자리를 비워 주었다. 고마운지고.
경치 좋고 공기 맑고 이보다 더 좋은 워십명당이 어디 있을까? 우린 걸터앉아 산상예배를 드렸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엄광산 정상에 울려 퍼지는 가락이 온 부산 하늘에 찬양음 파동을 전하였으리라. 이어 k장로님이 “오늘까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교회와 나라와 순원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렸다.
함께 찬양한 후 6.25 한국전란 66주년을 맞이한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돌아보았고 브렉시트 사태로 빚어질 나라 살림의 어려움이며 심각한 현안 문제로 대두된 동성애 문제와 군형법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한 문제점을 거론한 후 우린 마음을 모아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다.산정이라 그런지 우리 기도가 더 간절해졌다.
하나님께서 꼭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이 갔다. 주기도로 마무리 짓자 우리 자신도 모르게 누구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사의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는 나들이 때마다 간식거리를 준비해 주는 고마운 k여집사님 덕에 사과도 먹고 조코렛도 맛보았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정상에서 인증 샷을 해야 한다며 표지석 앞에 서고 앉고.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표정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남은 인생
에서 이 순간이 제일 젊은 시간이기도 하다.
내려오는 길바닥에는 마포(麻布)로 꼬아 제법 넓게, 근 2m 폭으로 깔아놓았고 폐(廢) 다이어 자른 것으로 엮어 깔이 놓은 데가 있었다. 미끄럼도 방지하고
쿳숀 역할도 하여주어 아주 좋았다.
오가며 만나는, 산을 찾은 이들은 거의 남성이고 여성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유별나다. 얼마 전 서울 어느 산에서 산행 중의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후 여성들이 산행하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누가 던졌다. 그럴만한 이유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을 만날까봐 무서운 게 아니라 외진 곳에서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 떠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우리 사회가 사랑이 메마른 세상이 되었는지 개탄스러워진다.
산행하다 사람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갑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십니까?“ 등 인사말을 나누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다.
낯선 이들이라도 반갑다고 인사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 착한 이들이 산을 좋아한다. 그러기에 공자님도 인자는 요산이요, 지자는 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라 하지 않았던가?
표지판 길 안내를 보고 또 물어보기도 하고 한참을 내려오니 측백 수림(樹林)이 우거진 오솔길이 나 있다. 측백은 사람 몸에 좋은 피톤 치트를 특별히 많이 뿜어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무 아래 평상(平床)이 여러 개 놓여 있다. 그 한편에는 어르신들이 무리 지어 쉬고 있다. 조금 더 내려오니 동의대학교 야구장이 있고 길 양편에 대학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마침 셔틀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 우린 차에 올라 동의대역까지 편안히 내려 올 수 있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6.25 기념 산행순모임을 잘 마칠 수 있어 감사 또 감사!
2016.6.25. 김장오순 산행기. 산돌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