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로마교회의 구원서정교리
1. 로마교회 구원서정이 내용
로마교회는 개인의 구원이 실현되는 과정을 3단계의 은혜로
설명하였습니다.
1) 충족은혜
이 은혜는 교회 밖에서 들어온 성인(成人)들이 세례를 받기에
적합한 마음의 자세가 되도록 인도하는 초보적, 예비적 은혜를
말합니다.
이 충족은혜는 단순히 교회이 가르침을 지적으로 찬동하는
행위로 개혁자가 말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2) 주입은혜
주입은혜란 신자가 세례를 받을 때 은혜와 공로가 그 사람에게
기계적으로 주입되어 원죄와 과거의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는 은혜를말합니다.
그러므로 로마교회에서는 이 성례를 떠나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세례를 받게 되면 주입되는 은혜로 죄사함을 받아
칭의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을 제일칭의라 부룹니다.
주입은혜는 상존은총(常存恩寵), 협력은혜는 조력은총(助力恩寵)
이라 부릅니다. 상존은총은 그 이후의 생활여하에 따라서 상실될
수 있다고 봅니다.
3) 협력은혜
세례에서 주입은혜로 말미암아 제일칭의를 받은 사람은 날마다
새로와지고 거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응분의 공로로 인정받게 될 선행을 쌓는 일이며 이 일은
선행의 일을 돕는 하나님의 은혜에 인간이 계속하여 협력하여
쌓을 수 있습니다.
천주교의 교리는 “협력은혜는 우리 영혼을 돕는 초자연적인 은혜
니, 이로써 천주는 때를 따라 우리 영혼을 비추시며 그 마음을
움직이사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며 천당 영복을 얻게 하시느니라"
고하였습니다.
만일 주입은혜를 받은 자가 대죄를 하나남이라도 범하면 그 은혜는
곧 잃어버리게 되고 잃어버린 주입은혜 곧 상존은총을 회복하는
길은 고해(告解) 혹은 상등통회(上等痛悔)입니다.
고해란 영세(領洗)받은 후로 범한 되를 신부에게 고하여 신부의
사죄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며,
상등통회란 천주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를 뉘우침이니,
내 죄로 인하여 만유보다 사랑하여야할 지선하신 천주께 욕되게
한 것을 생각하고 아파하는 것입니다.
즉 로마교회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부단한 고해와 상등통회가
요구되며 또한 선행을 쌓아야 합니다.
도표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 충족은회 주입은혜 입력은혜 고행(苦行)
↓ ↓ ↓ ↓
구원서정 : 준비단계 → 칭의,양자 → 선행 의한 공로 → 만족
2. 로마교회의 구원서정교리 비판
로마교회는 구원교리 자체가 원리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1) 영세 전 충족은혜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생은 영세받을 때 주어지는 주입은혜로 이루어진다는 말인데,
중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며 인간은 피동적이기 때문에
중생 전에 인간이 그 변화를 받기에 합당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하는 충촉은혜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2) 협력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로마교회는 선행을 공로라고 주장하고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나,
선행은 공로가 아닙니다.
(눅 17:9; 롬 5:15-18; 6:23; 엡 2:8-10; 딤후 1:9; 딛 3:5)
3) 세례는 주요의 표요 인이며 중생 또는 사죄능력이 없습니다.
로마교회는 영세로
① 생득적 부패로부터 깨끗해지고
② 원죄에서 사함받고
③ 성화하는 은혜가 주입되며
④ 그리스도에게 연합시켜
⑤ 하늘 문을 열어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4) 주입은혜는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로마교회가 말하는 주입은혜는 우리가 말하는 중생, 신앙 칭의를
가져오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들은 이 은혜가 상실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중생하여 예수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다시
정죄받지 않으며 구원이 확정됩니다.
(롬 11:29; 고후 7:10; 빌 1:6; 살후 3:3; 딤후 4:18;
벧전 5:10; 요 10:27,28; 요 6:37)
이것이 칼빈의 견인(堅忍:구원의 영원한 보장)교리입니다.
☎ 칼빈의 5대교리:
① 인간의 전적타락
②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
③ 예수님의 제한 속죄
④ 성령님의 유효적 부르심(불가항력적 은혜)
⑤ 구원의 견인교리(구원의 영원성과 영속성)입니다.
5) 고해성사는 사죄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신부의 사죄는 하나님께서 사죄하신 것을 알려 주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재판적이며 효과적이라고 하니, 이는 죄의 중대성을
부정하고 사람이 구주의 직권을 자행하기 때문에 이 교리는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영세후의 범한 죄의 용서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만족은 충족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만족이 충족하다 함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교의신학. 하문호